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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하다가 물속에서 울어본 적 있나요?

by zo3yblog 2025. 4. 6.

 

 

익숙한 공간에서 낯선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날따라 수영장이 조금 더 조용하게 느껴졌고, 물은 유난히 차갑지 않았습니다. 익숙해진 환경 속에서 몸은 자연스럽게 움직였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운동이고, 누군가에게는 취미일 수 있는 공간이 제게는 그날 따라 작은 피난처처럼 느껴졌습니다. 차가운 물속에서 천천히 숨을 내쉬며, 저는 문득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수영장에서는 울어도 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눈물과 물이 섞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순간이 제게 처음이었습니다. 평소라면 민망했을 상황이지만, 물속은 모든 감정을 숨기기에 너무 완벽한 장소였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수영이라는 행위를 단순한 운동이 아닌, 감정을 풀어내는 하나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수영이 마음을 떠받쳐준 날들에 대하여

 

많은 분들이 수영을 운동으로 접근합니다. 체력 향상, 다이어트, 자세 교정 등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물속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정신까지 맡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물이란 공간은 독특합니다. 차가우면서도 따뜻하고,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가볍습니다. 그 모순적인 성질 덕분에, 몸을 맡기면 맡길수록 긴장이 풀리고 생각이 잠잠해집니다. 육체적인 움직임에 집중하는 동안, 머릿속의 소음은 점점 줄어들고 오롯이 나만 존재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특히 호흡을 조절하며 물속에서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일 때, 마음도 함께 정리되는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일상의 빠른 속도에 휩쓸려 정신없이 살다 보면 나조차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수영은 그런 감정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지금 힘들었구나. 나는 많이 지쳐 있었구나.

이런 말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아도 물속에서는 조용히 스스로에게 해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물속이라는 환경은 외부 자극을 상당히 차단해줍니다. 휴대폰도, 알림도, 대화도 없는 공간에서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요즘 같은 시대에 가장 사치스러운 경험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 사치 속에서, 저는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곤 했습니다.

 

 

 

물은 감정을 숨기지만, 동시에 드러나게 합니다.

 

그날 수영장에서 울었던 경험은 제가 수영을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전에는 정확한 자세나 빠른 속도에만 신경을 썼다면, 지금은 감정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는 시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기분이 너무 좋고, 어떤 날은 버거운 마음을 가득 안고 물에 들어가지만, 항상 수영을 마치고 나오는 순간에는 조금 더 가벼워진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수영이 삶의 중심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자신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면, 그리고 그 공간에서 다시 나를 마주하고 싶다면, 수영은 꽤 좋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물속은 아무 말 없이 받아주고, 또 아무 말 없이 내보내 주니까요.

 

그리고 울어도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괜찮습니다. 오늘은 마음껏 숨고, 또 나아가도 됩니다.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채 살아가는 모두에게, 수영이라는 행위가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